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쌍방울 레이더스 (문단 편집) === 주요 선수 === ||[[파일:attachment/쌍방울 레이더스/SBWRaiders2.jpg|width=100%]]|| || [[최의민|불암갑]]이 그린 리즈시절 쌍방울의 스타 선수들 || * [[강길룡]] - 1991~1993 쌍방울의 또다른 우완 선발투수. OB 베어스 트레이드 이전까지 쌍방울에서 2-3선발급 활약을 하던 선수였다. 그러나 OB 가서 항명사건에 연루되더니...[* 은퇴 후 [[경기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로 부임했으며 곽연수 감독의 퇴임 후 감독으로 승진했다. 현재는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 [[김광림(야구)|김광림]] - [[OB 베어스]]의 프랜차이즈 출신이었으나 1994년에 쌍방울로 트레이드되었고 1995년에 타격왕을 먹으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1996년 미스터 올스타가 되기도 했으나, 1997 시즌 중 현대로 트레이드되어 1998년에 우승반지를 끼고 시즌 후 방출되어 다시 돌아왔다. 1999 시즌 후 은퇴. 은퇴 후 해설자로 마이크를 잡았다가 친정팀 두산 타격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2017년에 [[kt wiz]]의 타격코치를 지냈고 이후 분당구B 리틀야구단 감독으로 있다. 지도자로서의 평은 괜찮은 편이다. * '''[[김기덕(1968년 6월)|김기덕]]''' - 김현욱, 성영재와 함께 또다른 잠수함 트로이카중 한 명. 사실 김현욱의 후덜덜한 포스에 가렸지, 쌍방울 노예의 시초는 김기덕이었다(...) 1994년부터 1999년까지 선발, 중간, 마무리 어디든 안 가리고 나와도 평균 이상은 뽑아내는 마당쇠. 2002 시즌 후 은퇴했다. 2020년 현재 [[한양대학교 야구부|한양대]] 감독. * '''[[김기태(1969)|김기태]]''' - 돌격대의 형님이자 해결사. '''왕방울.''' 쌍방울의 주장이자 팀을 대표했던 강타자. 이승엽 등장 전까지 좌타자 최다홈런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신인 최다홈런 기록도 그의 것이다. 또한 1997년에 .344의 타율로 타격왕까지 먹은 적이 있었다. 쌍방울 부도로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도 유일하게 버틴 선수였으나, 1999년에 [[김현욱(야구)|김현욱]]과 함께 삼성에 팔려갔다가 2001년 말 [[김응용]] 감독과의 불화로 쌍방울 선수단을 계승한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되어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팀의 최고참으로 활약하며 2004년 지명타자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기도 했다. 은퇴 이후에는 지도자로 변신, [[LG 트윈스]] 감독을 맡아 팀을 10년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2015년에는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부임하며 고향인 광주로 돌아왔고 [[2017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탄탄대로를 달리는가 했지만 각종 기행과 선수 기용에 대한 안팎의 불화 등이 겹치면서 2019년 불명예 퇴진했다. 이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코치와 2군 감독을 거쳐 [[kt wiz]] 2군 감독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선수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레전드임은 확실하고 레이더스에 있어서 '''최고의 스타이자 레전드'''라고 할 수 있다. * '''[[김원형]]''' - 영원한 '''어린왕자''', 돌격대의 처음이자 마지막 에이스. 최연소 [[노히트 노런]] 기록 보유. 쌍방울 레이더스 선발투수관련 각종 통산기록 1위[* 통산 최다승(70승), 최다패(73패), 최다이닝, 최다완투, 최다완봉, 최다 탈삼진 등등 여러 기록보유.] 그 후 쌍방울 선수단을 이어받은 SK에서 활동하다가 2011년 은퇴, 통산 134승 144패라는 성적을 거두었다. 은퇴 후 SK, 롯데 코치를 거쳐 2020년 [[두산 베어스]]의 투수 코치로 활동중 [[SK 와이번스]]의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으며, [[SSG 랜더스]]의 초대 감독이 되었고 [[2022년 한국시리즈]] 우승감독이 되었다. 지도자로서의 평은 보통.[* 2군 코치 시절 육성 쪽에서는 괜찮은 평을 들었으나 1군 투수 코치를 맡은 뒤에는 투수 교체 타이밍 쪽에서는 평가가 나쁜 편이다. 1군 투수코치 김원형의 경우 롯데, 두산 모두 1년차에는 괜찮으나 2년차에는 투수들이 망가져서 나쁜 평을 받았으며, 2021 시즌은 한 팀을 이끄는 감독의 포지션이 되었으니 책임이 막중하다.] '''김기태, 조규제와 더불어 레이더스의 상징성을 가진 대표적인 세 선수로 꼽힌다.''' * [[김현욱(야구)|김현욱]] - 삼성 출신 선수로 1995년 쌍방울로 이적한 뒤 1997년 구원으로만 20승...을 따냈으나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는 [[이대진]](17승), MVP는 [[이승엽]](홈런 - 최다안타 - 타점)에게 빼앗겼다.[* '''만들어진 기록'''에는 상을 줄 수 없다는 기자들 사이의 불문율에 의한 것이었다. [[김영덕|비난은 순간이고 기록은 영원하다]]에 대해서 기자들은 기록은 영원해도 상은 영원히 없다라고 맞불을 놓았다.] 1999년 친정 팀인 삼성에 팔려서 돌아갔다. 그리고, 삼성에서도 혹사당하다가(...) 2005년에 무릎 부상으로 35세에 은퇴했다. 은퇴 후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를 맡았다가 2018년부터 [[류중일]] 감독을 따라 LG 트레이너를 맡게 되었다가 류중일과 같이 물러났고 2023년부터는 [[롯데 자이언츠]]에 몸 담고 있다. * [[박성기(야구)|박성기]] - 초창기 쌍방울 암흑기 시절 좌완 에이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4년간 41승으로 이 기간동안 쌍방울 팀 내에서 [[박성기(야구)|박성기]]보다 더 많은 승수를 거둔 투수는 없었다.[* 이후 2년간 다소 폼이 떨어지긴 했지만 초창기 벌어들인 승수 덕택에 1996년까지는 팀 내 유일 통산 50승 이상 투수였다. 이후 김원형이 50승 돌파와 함께 꾸준한 활약으로 팀내 선발투수 관련 모든 기록 1위로 올라간다.] * [[김호(야구)|김호]] - 수비형 유격수로 1991년은 .233 11홈런 22도루를 했다. 구단 해체 이후에는 해태, 두산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2018시즌까지 [[삼성 라이온즈]]의 주루코치였고 2019시즌 부터는 [[류중일]] 사단에 함류하여 [[LG 트윈스]]의 1군 수비코치를 맡았다. * '''[[박경완]]''' - '''포도대장.''' 돌격대의 안방마님. '''크보 역사상 최고의 포수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레전드'''. * [[박노준]] - 말이 필요 없는 '''선린상고의 독일병정.''' 1994년 .303에 43도루를 했다. --그리고 [[인사이드 파크 호텔|훗날...]]-- * [[석수철]] - [[성균관대]] 시절 활약으로 국가대표에 뽑히고, 계약금 1억 5천에 1996년 1차지명으로 입단한 3루수. 첫 해의 나름 쏠쏠한 성적과 근성있는 모습으로 좋아하는 팬들이 많았다. 그러나 2년 차부터 고관절 부상으로 1군 경기에 아예 나오지 못하며, 결국 데뷔 첫 해 성적이 프로 마지막 성적이 되고 말았다. 현재는 [[성균관대학교 야구부|성균관대]] 코치를 거쳐서 [[군산상고 야구부]] 감독을 맡고 있다. * [[성영재]] - 김기덕, 김현욱과 같이 잠수함 투수로 활약했던 투수, 선발로 나오든, 구원으로 나오든 든든한 투수였다. 그 뒤 쌍방울이 해체되고, SK가 창단되고도 SK에 남았지만 이호준의 트레이드 상대가 되어 해태로 이적했으며, 중간에 병역비리로 구속된 일이 있고 기아, 두산, LG를 떠돌아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 현역 팀인 LG에서 은퇴하고 코치를 거쳐 LG의 [[프런트]]로 있다가 2017년 [[광주일고 야구부]] 감독을 맡았다. * [[심성보]] - '맘보'라는 별명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좌타 외야수이자, 타선에서는 유일하게 김기태를 받쳐 주던 또 다른 강타자. 김성근 재임 시절 포텐이 터졌지만, [[당뇨병]]으로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던 비운의 스타. 1998년 외야수 최다보살(20개)...한국판 원조 가르시아이자 '강견의 3심' 중 한 명. 나머지는 [[심재학]], [[심정수]]. 2020년 현재 [[천안북중학교]] 야구부 감독. * '''[[조규제]]''' - '''전주 특급'''. 쌍방울의 핵심 마무리. 킬인식의 감독초기시절 은근히 혹사당했다. 그 여파로 1995시즌에는 부상으로 사실상 개점휴업했고 그해 쌍방울은 초반 선두를 달리다가 역전패가 속출하며 최하위로 처졌다. 그 후에도 전주의 수호신으로써 잘 하다가 팀이 부도로 어렵던 시절 [[박경완]]과 함께 현대에 팔려갔다. 이후 2001년 SK로 재트레이드되어 2년간 있다가 2003년 현대, 2004년 KIA로 이적했고[* 2001년 [[조웅천]]과 함께 당시 신생팀이었던 SK의 전력 보강 목적으로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했으나 2003 시즌을 앞두고 FA 박경완의 보상 선수로 현대 유니콘스에 돌아와 그해 우승 반지를 하나 더 끼고 KIA로 이적했다.] 거기서 은퇴했다. '''김기태'''와 함께 레이더스의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다. * [[조용호]] - 천안북일고 출신으로 빙그레에 있었다가 별 활약을 못하고 1991년 쌍방울로 트레이드 된 첫해에 .318의 좋은 타율로 활약을 했다. * [[조원우(야구)|조원우]] - '''돌격대장'''. 400경기 이상 무실책은 한국 최고 기록일 뿐더러 메이저리그 기록마저도 뛰어넘는다. 쌍방울 해체 이후 SK-한화에서도 뛰다가 은퇴 후 한화, 롯데, SK의 코치로 재직하다가 2016년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이 되었다. 2021 시즌에는 SK-SSG의 퓨쳐스 리그 감독으로 현장에 복귀. * '''[[최태원(야구)|최태원]]''' - '''철인'''. 1009경기[* 기록 정정으로 1014경기에서 1009경기로 수정. 대주자로만 출장한 경기가 있었기 때문.] 연속출장으로 KBO에서는 이 부문 1위. 다만 1009경기 연속경기 출장 기록 중 369경기는 쌍방울의 후신 격 팀인 [[SK 와이번스]]에서 소화했다. 쌍방울 유니폼을 입은 기간으로 국한하면 1995년 4월 16일 [[무등 야구장|광주]] [[해태 타이거즈|해태]]전부터 1999년 10월 8일 [[전주종합운동장 야구장|전주]] [[LG 트윈스|LG]]전까지 635경기 연속 출장. 물론 635경기 연속 출장도 단일 구단 소속 연속경기 출장 기록으로는 1위다.[* 2위는 [[OB 베어스]]에서 뛰었던 [[김형석(야구)|김형석]]의 622경기, 현역 중 1위는 500+ 경기를 연속 출전한 [[황재균]].] [[삼성 라이온즈]]의 1군 수석코치를 맡았고 나름 제 몫을 했지만 감독이 바뀌면서 물러났다. 현재 지도자로써의 평가는 과거보다 굉장히 개선되어 호평을 받고 있는 중. * [[최한림]] - '''국내 최초의 좌완 사이드암.'''[* 사이드암 투수 자체가 우완일 경우 우타자에 강하기 때문에 기용되는데, 좌완 사이드 암은 우타자에게 약하다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결국 김현욱을 상대로 트레이드 되어 삼성에서 은퇴한다. 은퇴 후 [[전라중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오래 있다가 2018년부터 [[인상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